
솔직히 이건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자신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스크린 속 군인들이 명령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할 때, "저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은 단순한 역사 드라마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군사반란이란 무엇인가, 영화가 담은 역사적 맥락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직후 대한민국은 극도의 정치적 공백 상태에 빠졌습니다. 영화는 바로 그 혼돈의 틈을 파고듭니다. 육군 보안사령관 전두광이 이끄는 하나회 세력이 군 수뇌부를 장악하려는 쿠데타(coup d'état)를 일으키는 과정을 시간 순으로 촘촘하게 그려냅니다. 여기서 쿠데타란 무력 또는 위협을 통해 정부 권력을 불법적으로 탈취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민주적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권력 찬탈입니다.
12월 12일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서울의 주요 군부대가 차례로 장악되고 국방부 청사 앞에서는 총구가 맞부딪히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 사건은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군정(軍政), 즉 군부가 정치 권력을 직접 행사하는 체제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군정이란 민간 정부 대신 군사 조직이 국가 통치권을 장악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영화가 담고 있는 무게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그 시작이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졌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 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서울의 봄은 개봉 첫날 약 38만 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고, 최종 누적 관객 수 1,300만 명을 돌파하며 2023년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되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이 숫자 자체가 한국 관객들이 이 역사적 사건에 얼마나 목말라 있었는지를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황정민과 정우성, 두 배우가 만들어낸 긴장의 축
황정민이 연기하는 전두광과 정우성이 연기하는 이태신. 이 두 캐릭터가 맞부딪히는 장면들은 영화의 심장부입니다. 황정민은 냉철한 계산과 폭압적 카리스마를 동시에 구현해내고, 정우성은 헌정(憲政) 질서를 지키려는 군인의 묵직한 결기를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서 헌정이란 헌법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 체제를 의미하며, 영화에서 이태신이 지키려 한 것이 바로 이 원칙입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이태신이 전화기를 붙들고 지원군을 요청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명령 계통이 흔들리고, 믿었던 동료들이 하나둘씩 다른 편에 서는 상황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너무나 실제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성격상 군중이 움직이는 방향에 본능적으로 따라가는 편인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장면이 더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저였으면 그 전화를 끝까지 붙들고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려웠습니다.
김성수 감독은 영화 아수라에서 이미 강렬한 서스펜스 연출력을 증명한 바 있는데, 서울의 봄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절제된 리얼리즘을 선택했습니다. 탱크가 서울 시내를 이동하는 장면, 국방부 청사 앞 대치 상황은 당시 세트와 고증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이 장면들이 관객에게 주는 몰입감은 단순한 스펙터클이 아니라,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의 무게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나라면 어느 편에 섰을까, 인간적 고민의 문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불편함이었습니다. 저는 정의롭지 않은 일에는 동참하지 않으려는 편이지만, 동시에 혼자 튀는 행동을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 상황에 제가 있었다면 전두광 편에 서는 걸 거부하면서도 이태신처럼 끝까지 맞설 수 있었을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군인들 중 상당수도 저와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내 충성 강요(loyalty coercion)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충성 강요란 조직이나 상급자가 비합법적 명령에도 복종을 강제하는 메커니즘을 가리키는데, 이 영화는 바로 그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역사적 사실을 보면 그 결과는 냉혹합니다. 전두광의 편에 섰던 이들은 진급하고 권력을 누렸고, 이태신의 모티브가 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은 쿠데타 이후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강제전역을 당했습니다. 한 군인이 평생을 바쳐 쌓아온 경력이 그 한 밤 사이의 선택으로 모두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현실의 냉혹함은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극적입니다.
영화를 본 뒤 저는 다음 세 가지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 군중이 움직이는 방향이 곧 옳은 방향인가, 아니면 그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인가
- 개인의 양심과 조직의 명령이 충돌할 때, 인간은 어느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가
- 역사에서 패배한 정의는 후대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되어야 하는가
정의는 항상 승리하는가, 역사가 남긴 씁쓸한 질문
전두광의 실제 모티브인 전두환은 대통령직을 수행했고, 고령까지 비교적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재임 기간 중 경제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일부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그 공과(功過)를 따졌을 때 과(過)가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5·18 민주화운동 진압, 언론 통제, 인권 탄압 등의 역사적 책임은 어떤 경제 지표로도 상쇄되지 않습니다.
역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승자 편향(winner's bias)이라고 부릅니다. 승자 편향이란 역사의 기록과 평가가 승리한 세력의 시각으로 쓰이는 경향을 말하는데, 패배한 편의 정당성이나 희생은 묻혀버리기 쉽습니다. 왕조 시대의 역모도, 근현대의 쿠데타도 결국 이긴 편의 서사가 공식 역사가 되는 패턴을 반복해왔습니다.
국가기록원에 보존된 12.12 관련 기록에 따르면, 이 사건은 이후 1995년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공식적으로 군사반란으로 규정되었습니다(출처: 국가기록원). 법적으로는 정의가 뒤늦게 세워진 셈이지만, 그 사이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삶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장태완 장군처럼 끝까지 싸웠던 사람들이 그 결과로 무엇을 얻었는지를 생각하면,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기분이 왜 그렇게 무거웠는지 이해가 됩니다.
서울의 봄은 결국 정의가 항상 이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를 단순한 오락 이상으로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영화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실제 12.12 사건의 관련 기록을 함께 찾아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영화로 감정을 얻고, 역사 기록으로 사실을 채우면 훨씬 더 깊이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저라면 어느 편에 섰을까, 하고요.